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고사양'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의미는 많이 변했다. 사양이 높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단순하게 더 빠른 CPU와 더 많은 RAM이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하면 '고사양'으로 규정할 수 있었고, 자신의 컴퓨터가 그 정도에 해당하면 '고사양 시스템'인지 아니면 '저사양 시스템'인지 구분해 말하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CPU와 RAM을 기준으로 하면 틀림없이 고사양이거나 저사양이지만, GPU라는 녀석 덕택에 그 기준이 매우 애매해졌다. 물론 3GHz가 넘는 CPU에 1GB가 넘는 RAM에 최신 하이엔드급 그래픽 카드가 있는 컴퓨터라면 매우 쉽게 '고사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간에 있는 애매한 시스템들은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그 애매함에 대해서 몸으로 느끼는 경우는, 누군가 내게 '이 게임을 하려면 고사양 시스템이 필요하냐'고 물을 때이다. 상대적인 고사양 시스템과 절대적인 고사양 시스템의 중간에 놓인 시스템이 있고, 아마도 현재 내가 가진 컴퓨터가 바로 그 상황이기 때문인 것 같다.
CPU는 올해로 4년째 사용 중이고 바뀐 것은 그래픽 카드와 RAM 밖에 없다. CPU로 따지면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 속도임에 틀림이 없지만 RAM은 중간쯤이고 그래픽 카드로 따지면 아주 최신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하이엔드급'이다. 고사양을 필요로 한다는 게임을 실행하는 데에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컴퓨터를 고사양 컴퓨터로 부르기도 힘들다. 하드웨어 발전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 보니 '하이엔드'라고 분류하는 것도 애매하다.
간혹 특정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해서 '몇 점 이상이 되어야 고사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벤치마크 프로그램은 실생활에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 하드웨어 관련 포럼에서도 3DMark 등의 벤치마크 점수보다는 어떤 특정 게임에서의 성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벤치마크 프로그램 제작사는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계속 해야만 그들도 먹고 살 수 있으니, 실생활과 점점 동떨어진 과도한 수준으로 올라갈 뿐 실제 활용 수준은 안 중에도 없다. '우리가 만든 벤치마크 프로그램에서 몇 점 이상 내볼래면 내봐라' 식이다. 누군가 그 점수를 뛰어넘으면, 새로운 버전을 내놓는다. 점수를 뛰어넘은 어떤 시스템을 기준으로 해서 더 복잡한 그래픽으로 더 적은 점수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욱 더 상대적인 빈곤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의 의미가 '경쟁'이었나?
그리고 '고사양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라는 말도 애매하긴 하다. 거의 모든 게임은 요구 사양 정보에 최소 사양과 권장 사양을 언급하지만, 그 정보가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최소 사양이 정말 말 그대로 '실행이 되긴 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800x600 정도의 해상도로 실행 가능한 시스템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권장 사양 역시 마찬가지. 특정 해상도 이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적인 것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것을 쉽게 바꾸긴 어렵다. 더 복잡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가끔 이런 얘기를 꺼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냥 살어".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엔 부족감이 너무 크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TAG Misc.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는 그보다 과연 '고사양' 컴퓨터로 '고사양' 게임을 할 필요가 있는지 조차 회의적입니다.
2006/04/06 11:02이제 왠만한 게임은 콘솔로 나오고 있고, 비슷한 돈을 들여 CPU, 램, VGA을 업그레이드 해도 2~3년 밖에 못갈텐데 콘솔은 4년은 가잖아요.
서로 장단점이 있잖아요. 제게는 콘솔의 단점이 아직도 너무 크다는..
2006/04/06 11:43